[경향신문] 문명의 이기라곤 전봇대뿐인 여기, 10명의 전태일이 있다
문명의 이기라곤 전봇대뿐인 여기, 10명의 전태일이 있다
청송 | 글·사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경북 청송 폐교에 자리잡은 나무닭움직임연구소
<2020 연극 전태일-네 이름은 무엇이냐>의 전태일(10명)과 각혈 미싱노동자, 아역 ‘시다’ 역을 맡은 배우들이 ‘2020 연극 전태일 추진위원회’ 위원들과 함께 지난 21일 청송군 폐교(나무닭움직임연구소) 교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집중과 몰입’…전태일 50주기 기념 연극연습장소로 택한 폐교
“문명과 동떨어진 이 공간서 24시간 내내 연극만 생각해요”
연극엔 노동자·구두닦이·신문팔이 등 10명의 전태일 등장…그중 3명은 여성
폐교 교실 문 너머로 대사가 들려왔다. “밤늦게까지 일 시키는 거하고 일요일 날 일 시키는 거하고 다 불법인 기라.” 전태일과 아버지 전상수 역을 맡은 배우가 대사를 이어갔다. “법이요?” “니는 알 필요가 없다. 착실하게 기술이나 익혀라 마.” 이 교실은 <2020 연극 전태일-네 이름은 무엇이냐>(이하 <연극 전태일>) 연습장이다. 지난 15일 오후 3시50분, 교실을 찾았을 때 배우들은 의상과 소품, 무대를 온전히 갖춘 채 리허설을 진행 중이었다.
1993년 폐교된 경북 청송군 청송읍 송생초등학교는 지금 나무닭움직임연구소 공간이다. 사방을 둘러보면 논밭이 끝나는 지점 곳곳이 사과밭이다. 야트막한 야산 밑 곳곳에 사과나무가 있다. 연구소 500m 거리엔 청송사과공원이 들어섰다.
<연극 전태일> 배우들은 지난 2월14일 이곳에서 만나 첫 대본 리딩을 했다. 합숙하며 배역을 연구하고, 소품과 무대를 만들었다.
본무대 공연같이 치열한 리허설이 끝난 뒤 만난 윤새얀씨(전태일 6역)는 “시골 생활은 처음”이라고 했다. “자전거 타고 동네를 돌면 다 사과밭이죠. (천천히, 충분히) 대본 보고, 연기할 여유를 누려요. 저만을 돌아보는 시간도 많죠.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조성훈씨(전태일 2역)도 “이곳에서 평화를 느낀다. (연극 말고는) 아무 생각이 안 난다”고 했다.
폐교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연구소 주변에서 문명의 이기라곤 전봇대와 차 몇 대 말곤 찾아볼 수 없다. 야산과 논밭에 둘러싸인 이 적막과 고요의 공간에서 배우들은 몰입과 고양의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고기현씨(전태일 4역)는 “문명과 동떨어진 이 공간에서 24시간 내내 연극만 생각하고 지낸다”고 말했다. ‘생태맹’에서 깨려고 교실 뒤편 텃밭에서 상추, 토마토, 감자, 수박, 고구마, 딸기 같은 작물도 키운다고 했다. 연구소에서 6㎞ 떨어진 지점에서 주왕산국립공원이 시작된다. 김택민씨(전태일 8역)는 쉬는 날이면 주왕산에 간다고 했다. 그는 “폭포 가는 길 용추협곡을 지날 때면 다른 차원으로 가는 세계가 열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전태일 50주기 기념 연극의 연습 장소로 왜 이곳을 택했을까. <연극 전태일> 연출가인 장소익 나무닭움직임연구소 소장도 ‘집중’과 ‘몰입’을 이유로 들었다. 문화예술 노동자들의 엄혹한 현실 문제와도 이어진다. “도시에서 연습하는 게 녹록지가 않죠. 알바도 해야 하고요. 젊은 배우들은 자리를 잡고, 실력을 연마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런 시간들이 도시에선 나오지 않았어요. 코로나19 이전에도 그랬어요. 기획 초기 때 이곳에서 합숙을 하자 생각했죠.” 코로나19 이후 문화예술계 노동자들은 공연이 취소되면서 생계에 타격을 받았다.
<연극 전태일> 모티프나 타이틀은 문익환 목사(1918~1994)의 시 ‘전태일’에서 영감을 받았다. “한국의 하늘아/ 네 이름은 무엇이냐/ 내 이름은 전태일이다// (중략)//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죽음과 맞서 싸우는/ 미싱사들 시다들의 숨소리들아/ 너희의 이름이야 물론 전태일일 테지/ 여부가 있나/ 우리가 전태일이 아니면/ 누가 전태일이겠느냐.” 문 목사는 손수 종이에 쓴 시를 1980년 성탄절에 이소선 여사(1929~2011)에게 전했다.
연극엔 10명의 전태일이 나온다. 구두닦이·신문팔이·껌팔이 전태일, 문학청년 전태일, 소년가장 전태일 등을 연기한다. 투쟁하는 전태일에 어머니 이소선에게 어리광 부리는 전태일도 들어 있다. 전태일의 분신(分身)이 각 막을 오가며 이어지다 분신(焚身)에 다다른다.
10명의 배우가 각각 연기하는 이 전태일을 두고 장 소장은 “1명의 영웅인 전태일도 의미가 있지만, 일상에서 만나는 존재들, 전태일로 표현되는 이들을 그리려 했다”고 말했다. 10명 중 3명이 여성이다. 노동자라서 또 여성이라서 이중삼중의 차별·핍박을 받는 데다 노동과 운동의 서사에서 종종 가려지곤 하는 한국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을 반영한 캐스팅인 듯했다. 장 소장은 1993년 김성수 작가와 함께 쓴 <잠적/토템>에서도 여성 해고노동자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배우들은 각자의 ‘전태일’을 해석하며 다른 전태일과 어떻게 연결할지, 관객과 어떻게 함께할지를 고민했다. 김민규씨(전태일 5역)는 “1명의 전태일을 10명이 나눠 하면서도 어떻게 1명인 느낌으로 가야 할지를 두고 계속 고심한다. 전 열사를 만난 적이 없어 계속 관련 자료를 읽으며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 김갑연씨는 소식지에 “전태일은 영웅이자 희생자라고 생각한다”고 썼다. 자신의 죽음으로 개선된 노동 환경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암울한 현실에 순응하거나, 대단한 영웅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가 생각한 것, 옳다고 여기는 걸, 알고만 있는 것에서 나아가 개선하려고 행동한 사람”이라고 했다. 기획진이 촬영한 사진을 보면, 한 배우는 대본 연습장에 ‘세계 공통의 언어로, 미국에도 있고, 아프리카에도 있는 이야기’, 다른 배우는 ‘대사만 하면 TV 드라마’라고 적었다.
10명의 전태일과 미싱사가 극중 근로기준법과 현수막을 들고 투쟁 결의를 다지는 장면(왼쪽 사진)과 전태일이 청계천 평화시장 피복 공장 노동자들의 노동 실태를 알리려 관공서를 찾았다가 공무원들 벽에 가로막히는 모습.
지금도 이어지는 노동문제, 예술적 연대 위해 ‘전태일’ 다시 무대 올려
2007년 극단 ‘한강’ 통째로 옮겨 청송 폐교로 온 연출가 장소익 소장
마을과 예술 관계 고민…예술제·연극제 통해 주민들을 주체로 만들어
토드 헤인즈의 2007년작 <아임 낫 데어>에서 성별도, 인종도, 나이도 다른 7명의 배우가 각각의 밥 딜런을 연기한다. <연극 전태일>에서 전태일은 1명에서 10명이 되었다가 다시 1명으로, 끝내는 ‘우리 모두’가 된다.
<아임 낫 데어>를 차용한 건 아니다. <연극 전태일>은 앞서 전태일 30주기인 2000년에 초연했다. 2020년 작품엔 음악을 새로 추가하고, 곡도 새로 썼다.
전태일이 분신한 50년 전에도, 이 연극을 처음 무대에 올린 20년 전에도, 지금도 노동 문제는 이어진다. 장 소장은 “김용균씨 죽음 같은 일들이 계속 벌어진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은 너무 고통스럽게 진행된다. 철탑에 올라 몇백일을 지내야 한다. 지금 현실 문제에 예술적으로 같이 연대하는 방법을 찾다가 <연극 전태일>을 다시 무대에 올리자고 했다”고 말했다.
이소선 여사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2009년 1월 시작한 ‘80년, 내가 살아온 이야기’ 경향신문 연재를 앞두고 가진 오도엽 시인과의 대담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두고 “1970·80·90년대 이 산을 넘으면 소외받고 천대받는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올 거라고, 얻어맞고 발로 차이고 감옥 가면서도 헤매고 다녔는데 이제 보니 억장이 무너집디다”라고 했다. 그는 “없는 사람들이 또 짐승처럼 되어가는 현실이 올까봐 자다가도 놀란다”고도 했다.
배우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에서 인문학 강의도 들었다. 3월14일엔 강명자 전 구로동맹파업 대우어패럴 동지회 대표가 ‘평생 미싱노동자로부터 듣는 노동자의 삶’,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소장이 ‘초보 노동자들에게 들려주는 노동 이야기’란 주제로 강연했다. 3월27일엔 조영선 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총장이 ‘우리 시대 인권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들 강사는 2020 연극 전태일 추진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연극 전태일>은 공동체를 지향한다. 어린 ‘시다’ 역은 지역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맡는다. 추진위는 6월18~20일 서울 구로아트밸리를 시작으로 전국 19곳, 일본 1곳에서 순회 공연을 하려 한다. 이소선 역엔 순회 지역 배우들이 우정 출연한다. ‘지역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공연’은 나무닭움직임연구소의 모토이기도 하다.
장 소장은 2007년 11월 청송으로 왔다. 경북도교육청에서 이 폐교를 빌린 뒤 극단 ‘한강’ 짐을 다 옮겨 왔다. 극장이 굳이 서울 대학로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결론 냈다. 2009년엔 대학로 극장도 처분했다.
청송에 오기 전 경북 성주의 한 폐교에서 재충전하려 3년가량을 지냈다. 그는 스콧 니어링(1883~1983)과 헬렌 니어링(1904~1995)의 책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폐교에서의 삶과 예술은 ‘간소한 생활’ ‘자연과 사람 사이 가치 있는 만남’ 같은 니어링의 좌우명을 따르는 듯했다.
장 소장은 마을과 예술의 관계를 고민했다. 마을 공연에서 주민들은 객체가 아니다. 연구소는 마을 속으로도 파고들었다. 대보름 때면 풍물을 치며 주민들과 함께했다. ‘청송사과축제 사과도깨비춤 퍼레이드 경연대회’를 기획·진행하고, 청송군 현서면 아이들과 노래인형극 <강아지똥>을 제작했다. 전국 각지 여러 예술축제, 연극제에도 참가했다. 극단과 극장을 서울 대학로에 둘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입증해 나갔다.
장 소장은 노동, 환경, 탈핵 같은 묵직한 주제로 예술 활동을 벌여왔다. 1996년엔 토론연극 <산재>를 무대에 올렸다. 장 소장과 연구소의 연대와 운동 징표를 폐교 에서도 확인했다. 운동장 한편엔 시커먼 대형 천막이 한 동 서 있다. 2017년 1월 광화문광장 문화예술인 캠핑촌에 설치한 ‘광장극장: 블랙텐트’다. ‘빼앗긴 극장, 여기 다시 세우다’라는 현수막을 블랙텐트 입구에 내걸었다. 2005년 광주에서 열린 동아시아 민중 연극제 때 선보인 천막이다. 장 소장과 일본작가가 천막을 만들었다. 연극인과 콜트콜텍·유성기업·기륭전자 등 해고노동자들이 이 천막을 다시 광화문에 세웠다. 송경동 시인은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로 무대에서 배제된 문화예술인들이 투쟁과 저항의 의지로 공연을 벌인 공연문화사에 기록될 역사적 공간”이라고 말했다. 천과 철재 모두 그대로 이곳으로 옮겼다. 장 소장은 “주민들은 서커스단이 온 줄 알았다”며 웃었다.
저녁 두 번째 리허설은 본무대처럼 꾸며졌다. 공동 추진위원장인 조영선 변호사와 박승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소장(목사), 추진위원인 박선봉 전 민주노총 문화국장 등이 관람했다. 조 변호사는 해고노동자 출신이다. 박 목사는 청계피복노조 합법화 투쟁을 벌였다.
뒤풀이는 ‘먹거리 연대’의 시간이었다. 여수 GS칼텍스 해고자 김홍주씨가 여수 특산물인 돌산갓김치와 자연산 회, 간고등어 등 먹거리를 20개 아이스박스에 담아 보냈다. 인천과 대구 추진위원들도 술과 음식을 가져와 배우·제작진과 나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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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5202228005&code=350101#csidxee848381338045794dffdfb94281caf